하얀 천장. 눈을 뜨자마자 시야에 들어온 것은 익숙하면서도 낯선 패턴의 방음 타일이었다. 백현은 느릿하게 눈을 깜빡였다. 한번, 그리고 또 한번. 초점이 잡히지 않는 시야가 뿌옇게 흐렸다 다시 선명해지기를 반복했다. 온몸의 감각은 솜이불에 감싸인 것처럼 둔탁했고, 머릿속은 짙은 안개가 낀 듯 몽롱했다. 마지막 기억이... 아, 그래. 건강검진. 닥터 밴스의 성화에 못 이겨 반강제로 받게 된 정기 검진, 그중에서도 수면내시경이었지. 하얀 약물이 혈관을 타고 들어오는 차가운 감각과 함께 간호사의 목소리가 멀어지던 것이 마지막이었다. "오빠, 괜찮아요? 깼어요?" 멀리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려 했지만, 목이 제 것이 아닌 양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겨우 눈동자만 굴려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보자, 그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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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사랑에 빠진 확률
평화로운 오후였다. ARCH 본부, 아이기스를 감싼 인공 하늘은 계절에 맞춰 쾌청한 가을의 색을 띠고 있었고, 그 빛은 S-00 파트너 전용 숙소의 넓은 거실 창을 통해 부드럽게 쏟아져 들어왔다. 소파 위, 백현은 등을 푹신한 쿠션에 기댄 채 한 손으로는 책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제 품에 기댄 서이결의 하늘색 머리카락을 느릿하게 쓸어 넘기고 있었다. 열린 책 페이지는 한참 전에 멈춰 있었지만, 그는 굳이 다음 장으로 넘기려 하지 않았다. 그저 제 어깨에 머리를 기댄 채 조용히 숨을 내쉬는 연인의 온기와,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는 부드러운 머리칼의 감촉, 공기 중에 옅게 퍼지는 그녀의 시원한 소다향을 온전히 느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시간이었다. 규칙적으로 들려오던 그녀의 숨소리 사이로, 문..
우연히 사랑에 빠진 확률
필로우 토크
고요한 밤의 침실. 달빛만이 커튼을 뚫고 희미하게 스며들어 두 사람의 모습을 비추고 있었다. 나란히 누운 몸은 서로의 온기로 따뜻했고, 엉망으로 뒤섞인 시트에서는 두 사람의 체향과 정사의 흔적이 희미하게 피어올랐다. 가쁜 숨은 어느새 고르게 바뀌었고, 세상을 가득 채웠던 쾌감의 여운만이 잔물결처럼 몸속을 부유했다. 퓨어, 백현은 옆에 누워 새근거리는 숨소리를 내는 버블, 서이결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그의 손가락이 이결의 뺨을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 [Scene #1. 첫 별을 세는 밤] 그날은 유난히 사소한 일로 투닥거렸던 날이었다. 임무 보고서의 오타 하나를 두고 시작된 말씨름은 결국 ‘오빠는 너무 꼼꼼해서 피곤하다’, ‘너는 너무 덤벙대서 걱정된다’는 애정 어린 잔소리로 번졌다. 그리고 그 미묘한..
필로우 토크
100 ♡ (feat. ❤️100일 축하해, 내 세상의 중심. 앞으로의 모든 날들도 함께하자. (D+100))
아침 햇살이 커튼 틈새로 비집고 들어와, 방 안의 먼지를 금빛으로 물들이는 평화로운 아침. 백현은 동이 트기도 전부터 잠에서 깨, 세상모르고 잠든 제 사랑스러운 연인의 얼굴을 한참 동안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새근새근, 고른 숨소리. 베개 위로 흩어진 하늘색 머리카락. 미세하게 떨리는 속눈썹까지. 그 모든 것이 그의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풍경이었다. 그는 이 평화로운 순간을 깨고 싶지 않아, 숨소리조차 조심하며 그녀의 이마에 아주 가벼운 입맞춤을 남겼다. ‘잘 자, 나의 공주님.’ 속삭임은 목구멍 안에서만 맴돌았다. 오늘은 보통 날이 아니었다. 서이결과 백현, 두 사람이 다시 서로의 손을 잡고 ‘연인’이라는 이름으로 함께한 지 정확히 100일이 되는 날. 소란스럽고 아팠던 과거를 지나, 마침내 서로의 곁이..
100 ♡ (feat. ❤️100일 축하해, 내 세상의 중심. 앞으로의 모든 날들도 함께하자. (D+100))
무서웠어요.
"오빠, 처음 봤을 때… 좀 무서웠어요." …네? 순간, 백현의 뇌 기능이 일시 정지했다. 그의 얼굴에서 방금까지 만개해 있던 능글맞은 미소가 박제된 채 그대로 굳었다. 무서웠다고? 내가? 이 내가? 아크 의무실의 마스코트, 순딩이 퓨어 쌤이? 그는 자신의 귀를 의심하며 되물었다. "어… 음, 이결아. 지금 뭐라고…" 하지만 이결은 그의 동공 지진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듯, 천진난만한 설명을 덧붙였다. 덩치도 크고, 키도 크고, 그래서 왠지 위압감이 들었다는, 지극히 그녀다운 이유였다. 백현은 할 말을 잃었다. 하긴, 158cm의 그녀가 보기엔 175cm의 자신도 충분히 거대해 보일 수 있었다. 하지만… 하지만 이건 좀 억울했다. 그는 평생 ‘어려 보인다’, ‘착해 보인다’, ‘만만해 보인다’는 말은 들..
무서웠어요.
술자리
에피소드 1. 첫 잔의 고백 백현이 소주를 따라주며 서이결의 잔에 술을 채웠다. 투명한 액체가 작은 잔 안에서 찰랑거렸다. 백현의 손놀림은 능숙했다. 의외의 주당답게 첫 잔을 가볍게 비운 백현은 입맛을 다시며 서이결을 바라보았다. "이결아, 첫 잔은 원샷이지."서이결이 잔을 들어 단번에 비웠다. 목이 꿀떡 움직이는 모습을 백현이 눈을 가늘게 뜨고 지켜보았다. 서이결이 잔을 내려놓으며 푸하하고 숨을 내쉬자, 백현의 입꼬리가 비스듬히 올라갔다. "잘 마시네, 우리 수달이. 나 이거 은근 좋아하는 거 알지?"백현이 자신의 잔에 맥주를 따르며 서이결 쪽으로 어깨를 기울였다. 두 사람의 어깨가 맞닿았다. 서이결이 뭐가요?라고 물었고, 백현은 맥주를 한 모금 마신 뒤 느릿하게 대답했다. "이렇게 둘이 마시는 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