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의 어느 일요일 오후였다. 햇살이 숙소 거실의 커튼 사이로 비스듬히 흘러들어 마루 위에 따뜻한 직사각형을 그리고 있었다. 히터가 낮은 웅웅거림으로 공기를 데우고 있었고, 텔레비전에서는 아무도 보지 않는 요리 프로그램이 작은 소리로 흘러나왔다. 소파 위에는 담요가 구겨진 채 놓여 있었고, 그 옆으로 백현의 긴 다리가 느슨하게 뻗어 있었다.
최근 일주일은 말 그대로 전쟁이었다. 연말연시를 틈타 괴수 출몰 빈도가 급증했고, 의무실은 말 그대로 전시 체제로 돌아갔다. 비상근이라고는 하지만 긴급 호출이 세 번이나 울렸고, 그때마다 백현은 서이결의 곁을 떠나 새벽 의무실로 뛰어가야 했다. 돌아올 때면 서이결은 이미 잠들어 있었고, 아침엔 백현이 먼저 눈을 떴다. 서로의 체온을 확인하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었다. 오늘은 그런 나날 끝에 찾아온, 진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첫 번째 휴일이었다. 백현은 소파 등받이에 머리를 기대고 반쯤 감긴 눈으로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피로가 솜처럼 온몸에 쌓여 있었지만, 나쁘지 않았다. 왜냐하면.
서이결이 바로 옆에 있었으니까. 소파 바닥에 앉아 백현의 무릎 곁에 어깨를 기대고 있는 작은 체구. 하늘빛 웨이브 머리카락이 백현의 무릎 위로 흘러내려 있었고, 서이결의 손가락이 백현의 스웨트팬츠 밑단을 무심한 듯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백현은 그 감촉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떴다를 반복했다. 졸린 것도 아니고, 깨어 있는 것도 아닌 나른한 경계. 서이결의 손가락이 천을 잡았다 놓았다 하는 리듬이 심장 박동처럼 규칙적이었다.
그러다 서이결의 손이 멈췄다. 백현은 반사적으로 눈을 내려깔았다. 서이결이 고개를 들어 올리고 있었다. 보랏빛 눈동자가 아래에서 위로 백현을 올려다보았다. 오후의 햇살이 그 눈동자 안에 금빛 점을 찍어놓고 있었다. 볼이 살짝 붉었다. 입술이 한 번 달싹였다가 다시 다물렸다. 그리고.
"...오빠, 요즘 나한테 좋아한다는 말 왜 안 해요?"
서이결의 목소리는 작았다. 투정이라기엔 너무 조심스럽고, 질문이라기엔 너무 간절한 톤. 백현의 옷자락을 잡은 손가락에 살짝 힘이 들어가 있었다. 귀여워, 라는 말도. 라고 덧붙인 목소리는 더 작아져서 거의 중얼거림에 가까웠다.
백현의 뇌가 2초간 정지했다.
좋아한다는 말을 안 했다고? 내가? 서이결한테? 그게 가능한가? 백현은 최근 일주일을 빠르게 되감았다. 새벽 출동, 차트 정리, 폭주 센티넬 세 명 연속 가이딩, 이수아한테 넘긴 인수인계서, 닥터 밴스의 잔소리, 복귀 후 소파에 쓰러져 잠든 밤들. 그 사이사이에 서이결에게 뭐라고 했더라. 다녀올게, 잘 자, 밥 먹어, 조심해. 일상적인 말들. 필요한 말들. 하지만 그 안에 좋아해는. 귀여워는.
없었다.
백현의 가슴 한가운데가 쿡, 하고 찔렸다. 좋은 의미가 아니었다. 서이결이 이 말을 꺼내기까지 얼마나 참았을까. 이 사람은 원래 먼저 말하는 법이 없는 사람이다. 감정을 꺼내는 데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한 사람인지 백현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런 서이결이 볼을 붉히며, 목소리를 낮추며, 옷자락을 만지작거리며 겨우 꺼낸 말이 왜 안 해줘요?라니. 백현은 자신의 심장이 아래로 쿵, 떨어지는 감각을 느꼈다. 미안함과 사랑스러움이 동시에 치밀어 올라 목구멍이 뜨거워졌다.
백현은 몸을 앞으로 숙였다. 소파에서 미끄러지듯 내려와 서이결과 같은 높이에 앉았다. 바닥의 차가움이 엉덩이를 통해 올라왔지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백현의 양손이 서이결의 볼을 감쌌다. 따뜻한 손바닥 안에 작은 얼굴이 쏙 들어왔다. 살짝 붉어진 볼이 손바닥에 닿았다. 백현은 서이결의 얼굴을 자기 쪽으로 들어올려 정면으로 마주했다. 검은 눈동자가 서이결의 보랏빛 눈을 가득 담았다.
"이결아."
백현의 목소리는 낮고 또렷했다. 장난기가 전혀 없는, 진심만으로 채워진 톤.
"좋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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