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의 마지막 주가 다가오고 있었다. 밖에서는 겨울바람이 숙소동 창문을 간간이 두드렸고, 복도 곳곳에 걸린 크리스마스 장식들이 은은한 조명 아래 반짝이고 있었다. ARCH 본부는 연말 분위기에 젖어 평소보다 조금 더 느긋한 공기가 흘렀다. 며칠 전의 상처는, 백현의 팔 위에 남았던 붉은 선은 약속대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서이결의 퉁퉁 부었던 눈두덩도 본래의 동그란 모양을 되찾았다. 두 사람은 그 뒤로도 매일같이 함께 밥을 먹고, 소파에 나란히 앉아 드라마를 보다 서이결이 먼저 잠들면 백현이 담요를 덮어주는, 그런 일상을 반복했다. 너무 달달해서 옆에서 보면 치아가 녹을 것 같은 종류의 일상이었다.
그리고 오늘. 12월 27일, 토요일 오후. 백현은 소파에 비스듬히 기대앉아 태블릿으로 의무실 스케줄을 확인하고 있었다. 연말이라 비번인 요원들이 많아 의무실도 한산했고, 백현도 오늘은 완전한 쉬는 날이었다. 거실 한쪽에는 버주, 그 거대한 수달 인형이 소파 한 귀퉁이를 점령하고 있었고, 탁자 위에는 아까 백현이 깎아둔 사과 접시가 놓여 있었다. 백현은 태블릿 너머로 서이결을 힐끗 올려다보았다. 서이결이 어디선가 와서 자기 앞에 떡하니 서 있었다. 허리에 손을 올리고. 표정은 진지했다. 아주 진지했다. 하지만 볼이 약간 부풀어 있는 것이, 화가 났다기보다는 무언가를 참고 있는 얼굴이었다.
백현은 태블릿을 내려놓았다. 서이결의 보랏빛 눈동자가 위에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158센티미터의 전 위엄이 자기 앞에 서서 허리에 손까지 올리고 있으니, 솔직히 말하면, 백현의 뇌리에 가장 먼저 떠오른 단어는 '위엄'이 아니라 '귀여워 죽겠다'였다. 하지만 그걸 입 밖에 내면 상황이 악화될 것이라는 직감이 있었다. 백현은 검은 눈을 살짝 크게 떴다. 처진 눈매가 동그랗게 변했다.
서이결이 선언했다. '전 아기가 아니라 어른이에요! 어른 수달!'이라고. 백현은 정확히 2초간 정적을 유지했다. 서이결의 말이 공중에서 메아리치는 시간이었다. 어른 수달. 어른. 수달. 백현의 뇌가 그 조합을 처리하는 데 2초가 걸렸다. 서이결이 '수달'이라는 호칭 자체에는 전혀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백현의 심장을 정확히 한 대 때렸다. 세게. 아주 세게. 서이결은 수달이라는 정체성은 수긍한 채로 오직 '아기'라는 수식어만 거부하고 있었다. 세상에. 백현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웃으면 안 됐다. 지금 웃으면 서이결이 볼을 더 부풀리면서 발을 동동 구를 것이고, 그러면 백현은 진짜로 심장이 멈출 것이었다.
"어... 응."
백현은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최대한 진지한 표정을 유지하려 애썼다. 하지만 입꼬리가 떨리고 있었다. 눈에 보이게. 백현은 소파에서 등을 일으켜 서이결을 똑바로 올려다보았다. 앉은 백현의 시선 높이에서 서이결의 허리에 올린 손이 보였다. 작은 손가락들이 후드 재킷 위에서 꼬물거리고 있었다.
"어른 수달."
따라 해 보았다. 입 안에서 굴려보니 이상한 맛이 났다. 아기 수달이 혀 위에서 구르는 감촉과는 전혀 달랐다. 백현은 서이결의 얼굴을 찬찬히 올려다보았다. 동그란 보랏빛 눈. 볼에 아직 남아 있는 홍조. 파스텔 블루 이너 위로 삐져나온 하늘빛 머리카락. 158센티미터. 손가락 마디마디가 콜라 캔보다 가늘었다.
"...이결아."
백현은 참다 참다 결국 웃음이 새어 나왔다. 푸흣, 하고 코끝에서 터진 짧은 웃음이었다.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뒤로 소파에 등을 기댔다. 어깨가 들썩였다.
"아니, 미안. 미안해. 웃으면 안 되는 거 알아. 근데."
손가락 사이로 서이결을 올려다보았다. 검은 눈동자가 웃음기로 반짝이고 있었다.
"지금 본인이 뭐라고 했는지 알아? '어른 수달'이라고 했어. 수달은 인정한 거잖아. 수달은 맞는 거잖아. 이결아, 거기에 동의한 거 맞지? 맞지?"
백현은 소파에서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서이결의 허리에 올려진 손을 살짝 잡아 당겼다. 서이결의 손가락을 자기 손안에 가두고, 엄지로 손등을 천천히 쓸었다. 처진 눈매가 초승달처럼 휘어졌다.
"좋아, 좋아. 어른 수달. 인정할게. 우리 이결이는 어른 수달이야. 다 컸어. 어엉, 다 컸지."
말투는 인정하는 척이었지만, 톤은 완벽하게 아기 달래는 톤이었다. 백현 본인은 전혀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알면서도 그러는 것이었다. 그의 엄지가 서이결의 손목 안쪽, 맥박이 뛰는 부드러운 피부 위를 느릿하게 쓸어 올라갔다. 비누향이 서이결의 코끝까지 은은하게 닿았다.
"이이익!"
백현은 서이결의 발이 바닥을 탕, 하고 구르는 소리를 들었다. 작은 스니커즈 밑창이 숙소 마루를 때리는 소리는, 솔직히 말하면, 아기 고양이가 화나서 발톱을 세우는 것과 비슷한 위력이었다. 즉, 위협적이기보다는 심장을 쥐어짜는 쪽에 가까웠다. 서이결의 볼이 복어처럼 부풀어 올랐고, 보랏빛 눈동자가 불만으로 가득 찬 채 백현을 쏘아보고 있었다. 백현은 그 시선을 정면으로 받으며, 자신의 입꼬리가 도저히 내려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물리적으로 불가능했다. 근육이 거부하고 있었다.
거실 창 너머로 12월의 짧은 해가 이미 기울기 시작하고 있었다. 오후의 낮은 햇살이 커튼 틈으로 비스듬히 들어와 서이결의 하늘빛 머리카락 끝자락을 금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소파 한쪽에 자리 잡은 버주, 특대형 수달 인형이 유리 눈으로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백현은 그 인형의 표정마저 '그러게요, 주인님은 수달 맞잖아요'라고 말하는 것 같다고 느꼈다. 탁자 위의 사과 접시에서 새콤한 향이 올라왔고, 가습기가 내뿜는 미세한 수증기가 따뜻한 공기 속에서 천천히 퍼져나갔다.
"아, 잠깐. 잠깐만."
백현은 한 손을 들어 항복의 제스처를 취했다. 하지만 그 손이 떨리고 있었다. 웃음을 참느라. 백현은 기침을 두어 번 하며 표정을 고쳐 잡으려 시도했다. 실패했다. 처진 눈매가 완전히 초승달이 되어버렸다. 백현은 결국 포기하고 소파에서 몸을 앞으로 숙이며 서이결의 부풀어 오른 볼을 두 손으로 살짝 감싸 쥐었다. 복어처럼 빵빵하게 부푼 볼이 손바닥 안에서 말랑하게 눌렸다.
"알았어, 알았어. 미안. 진짜 미안해."
전혀 미안하지 않은 목소리였다. 나긋나긋한 음색에 웃음기가 가득 실려 있었다. 백현의 엄지가 서이결의 볼 위를 천천히 쓸었다. 부드러운 피부 아래로 체온이 전해졌다. 서이결의 볼이 발그레하게 달아올라 있었는데, 화가 나서인지 부끄러워서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아마 둘 다일 것이었다. 백현은 그 사실이 또 귀여워서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백현은 서이결의 얼굴을 자기 쪽으로 살짝 당기며 눈높이를 맞추었다. 소파에 앉은 자신과 서 있는 서이결의 시선이 거의 같은 높이에서 마주쳤다. 검은 눈동자가 보랏빛 눈동자를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백현의 표정이 조금 바뀌었다. 웃음기는 여전했지만, 그 아래로 진심이 한 겹 깔렸다.
"그래, 우리 이결이 어른이지. 내가 잘못했어. 아기 수달 아니야."
말을 하면서도 손은 서이결의 볼을 떠나지 않았다. 엄지가 광대뼈 아래를 부드럽게 눌렀다가 놓기를 반복했다. 마치 말랑한 떡을 만지는 것처럼. 백현은 고개를 약간 기울이며 서이결의 눈을 올려다보았다. 그 각도에서 보면 백현의 처진 눈매가 유독 선해 보였다. 비누향이 두 사람 사이의 좁은 공간을 채웠다.
"근데 이결아, 한 가지만 물어봐도 돼?"
백현은 서이결의 볼에서 손을 떼는 대신, 한쪽 손을 내려 서이결의 손목을 가볍게 잡았다. 그리고 자기 옆자리, 소파 쿠션 위를 톡톡 두드렸다.
"어른 수달은 삐졌을 때 발 안 구르는 거 아니야? 방금 발 굴렀잖아. 탕탕."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가 서이결의 귓가에 닿았다. 백현은 서이결의 손목을 잡은 채 소파 쪽으로 살짝 잡아당겼다. 옆에 앉으라는 무언의 초대였다. 탁자 위 사과 접시가 햇살을 받아 반짝였고, 버주 인형이 푹신한 배를 내밀고 있었다. 백현의 검은 눈동자가 서이결을 향해 반달 모양으로 휘어져 있었다. 그 안에 담긴 감정은 놀림도, 조롱도 아니었다. 그냥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사람의 눈이었다.
서이결은 백현의 말에 입술을 꾹 다물었다. 발을 굴렀다는 사실을 지적당하자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던 것이다. 보랏빛 눈동자가 한 바퀴 굴러간 뒤, 서이결은 백현이 잡아당기는 손목의 힘에 저항하지 않고 소파 위로 톡 하고 주저앉았다. 쿠션이 푹 꺼지며 서이결의 작은 몸이 백현 쪽으로 살짝 기울었다. 하늘빛 머리카락이 백현의 어깨 위로 찰랑거리며 흘러내렸고, 시원한 소다향이 비누향과 뒤섞여 두 사람 사이의 공기를 채웠다.
백현은 옆자리에 앉은 서이결을 내려다보았다. 아니, 정확히는 거의 같은 높이에서 바라보았다. 소파에 나란히 앉으니 키 차이가 무색해졌다. 서이결의 볼은 여전히 살짝 부풀어 있었고, 입꼬리가 삐죽 내려가 있었다. 하지만 백현의 손목을 뿌리치지 않은 채 고분고분 앉은 것을 보면, 화가 진심은 아니라는 뜻이었다. 백현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서이결이 진짜로 화가 나면 이렇게 귀엽지 않았다. 진짜 화가 나면 오히려 조용해지고, 눈빛이 차가워지고, 단답이 돌아왔다. 지금 이 볼 부풀리기와 발 구르기는, 백현의 해석 체계에서는 '관심 끌기'에 가까운 신호였다. 그리고 백현은 그 신호에 기꺼이 응답할 준비가 늘 되어 있는 사람이었다.
백현은 탁자 위에서 사과 접시를 집어 들었다. 아까 정성스럽게 토끼 모양으로 깎아둔 사과 조각들이 접시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백현은 포크로 사과 한 조각을 집어 서이결의 입 앞으로 가져갔다. 토끼 귀처럼 뾰족하게 깎인 사과 조각이 서이결의 입술 앞에서 살짝 흔들렸다.
"어른 수달은 사과도 혼자 먹을 줄 알지? 근데 오늘은 내가 먹여줄게. 어른이니까 거부할 수도 있어. 선택은 이결이 몫이야."
백현의 목소리는 나긋나긋했다. 장난기가 잔뜩 묻어 있었지만, 동시에 서이결을 향한 다정함이 한 글자 한 글자에 스며 있었다. 백현의 검은 눈동자가 서이결의 반응을 기다리며 반짝였다. 처진 눈매가 부드럽게 휘어져 있었고, 입꼬리에는 참다 못해 새어 나온 미소가 걸려 있었다. 거실 창으로 들어오는 오후의 마지막 햇살이 백현의 흑발 위에 부드러운 윤기를 더했다.
사실 백현은 알고 있었다. 서이결이 이 사과를 거부할 리가 없다는 것을. 서이결은 백현이 해주는 것이라면 뭐든 좋아했고, 특히 먹여주는 것에는 유독 약했다. 본인은 어른이라고 주장하면서도 백현이 내미는 포크 앞에서는 입을 벌리는, 그 모순이 백현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광경이었다. 백현의 왼손은 자연스럽게 서이결의 허리 뒤쪽 소파 등받이에 걸쳐져 있었다. 팔을 두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서이결이 기대고 싶으면 언제든 기댈 수 있는 거리였다.
"아, 맞다. 이결아."
백현은 사과를 들고 있던 포크를 잠시 멈추며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 말했다.
"저녁 뭐 먹을까. 오늘 밖에 나갈까, 아니면 시켜 먹을까? 나 오늘 하루 종일 이결이랑 있을 건데, 메뉴 정해줘. 어른이니까 결정도 잘하잖아, 우리 어른 수달은."
'어른 수달'이라는 단어를 발음할 때마다 백현의 눈이 유독 반짝거렸다. 새로운 놀림거리를 발견한 사람의 눈이었다. 앞으로 최소 한 달은 이 단어를 우려먹을 것이 분명한 눈빛이었다. 백현은 서이결의 반응을 기다리며 포크를 다시 서이결의 입가로 가져갔다. 사과의 새콤한 향이 두 사람 사이에서 퍼졌고, 가습기의 부드러운 소리가 배경음악처럼 거실을 채웠다. 버주 인형은 여전히 소파 한쪽에서 유리 눈을 반짝이며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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