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소 거실. 겨울 저녁의 공기가 창문 틈으로 스며들고 있었고, 소파 위에 놓인 수달 인형 '버주'는 두 사람의 언성이 높아지는 와중에도 변함없이 둥글둥글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시작은 사소한 것이었다. 서이결이 오늘 훈련 중에 무리를 했다는 보고를 제삼자에게 전해 들은 백현이, 귀가한 서이결에게 물었다. 왜 말 안 했어, 라고. 그리고 서이결은 별거 아니었다고 답했다. 그 '별거 아니었다'가 백현의 신경을 긁었다.

두 사람 사이의 공기가 팽팽하게 당겨져 있었다. 백현은 소파 팔걸이에 기대선 채 팔짱을 끼고 있었고, 서이결은 그 맞은편에 서 있었다. 백현의 입술이 일자로 다물려 있었다. 평소의 나긋나긋한 곡선이 사라진 자리에 단단한 직선만이 남아 있었다.

"이결아, 별거 아닌 건 네가 정하는 게 아니라 내가 확인하는 거야.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겠어?"

백현의 목소리는 여전히 부드러웠다. 화를 내는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다만 그 부드러움 안에 실망이 얇게 깔려 있었다. 서이결이 또 혼자 감당하려 했다는 사실에 대한. 백현은 서이결의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처진 눈매 아래의 검은 눈동자가 평소보다 조금 더 깊게 가라앉아 있었다. 서이결이 무언가 반박하려 입을 열었고, 백현도 그에 맞서 한마디를 더 얹으려던 찰나.

서이결이 멈췄다. 반박의 말을 삼켰다. 대신 보랏빛 눈동자가 백현의 얼굴 위에 고정되었다. 빤히. 아주 빤히. 백현은 그 시선의 의미를 읽으려 했다. 뭐야, 왜 갑자기 그렇게 봐. 라는 말이 입 안에서 맴돌았다. 하지만 그 말이 나오기도 전에, 서이결의 양손이 백현의 볼을 덥석 움켜쥐었다.

무방비. 완전한 무방비 상태였다. 백현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서이결의 손가락이 백현의 볼살을 양쪽에서 꾹꾹 눌렀다. 위로 밀었다가. 아래로 당겼다가. 엄지와 검지로 볼을 모아 쥐었다가. 마치 편의점에서 파는 그 말랑한 촉감 장난감을 주무르듯. 백현의 입술이 볼살에 밀려 앞으로 쭈욱 내밀어졌다. 물고기 입 모양. 아니, 오리 주둥이에 더 가까웠다. 백현의 뇌가 2초간 완전히 정지했다. 방금까지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겠어'라고 진지하게 따지던 사람의 얼굴이 지금 떡으로 변하고 있었다.

서이결의 손가락은 멈추지 않았다. 꾹. 쭈욱. 물렁물렁. 백현의 볼살은 의외로 탄력이 있었다. 마른 체구에 비해 볼에만 유독 살이 있는 편이었는데, 서이결의 손 안에서 그것이 제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었다. 백현은 서이결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고개를 뒤로 젖혔지만, 서이결의 손은 따라왔다. 집요하게. 단호하게. 마치 이 말랑한 촉감을 놓치면 안 된다는 듯이.

백현의 머릿속에서 여러 가지 감정이 동시에 충돌했다. 첫 번째, 당혹. 지금 뭐 하는 거지? 나 진지하게 말하고 있었는데? 두 번째, 억울함. 내 볼이 그렇게 말랑해? 아니, 그건 중요한 게 아니고. 세 번째. 이건 인정하기 싫었지만. 서이결의 진지한 얼굴로 자신의 볼을 주무르는 모습이. 약간. 아주 약간. 귀여웠다. 아니 귀여운 게 아니라 황당한 거다. 맞아. 황당한 거야. 백현은 스스로를 설득하려 했지만, 입꼬리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웃음을 참는 떨림이었다.

"야, 서이결."

볼살이 눌린 상태에서 나온 목소리는 완전히 뭉개져 있었다. '야'가 '햐'처럼 들렸고, '서이결'이 '쇼이겨'처럼 들렸다. 백현은 서이결의 손목을 잡으려 했지만, 서이결의 손가락은 이미 새로운 각도에서 볼살 공략을 시작하고 있었다. 광대뼈 아래를 엄지로 꾹 누르고, 턱선을 따라 손가락을 미끄러뜨리며, 다시 양볼을 모아 쥐는 동작. 스트레스 해소용 말랑이의 운명을 타고난 볼이었다.

백현의 내면에서 분노의 온도가 빠르게 식어가고 있었다. 아니, 분노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것이었다. 원래 화가 난 게 아니었으니까. 걱정이었으니까. 그리고 지금 이 상황. 서이결이 자신의 볼을 주무르며 아무 말 없이 빤히 쳐다보고 있는 이 상황이. 백현의 걱정과 서운함을 전부 녹여버리고 있었다. 비겁하게. 아주 효과적으로.

"......지금 나 말랑이야?"

백현은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볼살이 눌린 채로 터진 웃음이라 소리가 이상하게 나왔다. 푸흡, 하는 소리. 코웃음과 실소가 섞인. 백현의 손이 서이결의 손목을 잡았지만, 떼어내지는 않았다. 그냥 잡고만 있었다. 서이결의 손가락이 자신의 볼 위에서 꾹꾹 누르는 것을 느끼면서. 백현은 생각했다.

백현의 볼을 주무르는 서이결의 손가락은 여전히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꾹. 물렁. 쭈욱. 리드미컬하게. 마치 이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촉감의 말랑이를 발견한 사람처럼, 서이결의 표정은 진지했다. 아주 진지했다. 눈썹 사이에 작은 주름까지 잡힌 채로. 백현은 그 표정을 올려다보며 생각했다. 이 사람이 지금 나한테 화가 난 건지, 아니면 나를 장난감 취급하고 있는 건지. 아마 둘 다일 것이다. 서이결식 반격이었다. 말로 하면 지니까 물리적으로 나온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하필 볼 주무르기라는 사실이 백현의 자존심을 미묘하게 건드렸다. 하지만 자존심보다 더 큰 문제가 있었다. 웃음이 멈추지 않는다는 것.

"아, 잠깐. 잠깐만."

백현은 서이결의 손목을 잡은 채 고개를 옆으로 돌리려 했다. 하지만 서이결의 손은 끈질겼다. 백현이 고개를 돌리면 손도 따라 돌았고, 백현이 턱을 당기면 손가락이 턱선을 따라 미끄러져 다시 볼을 잡았다. 백현의 입에서 푸흡, 하는 소리가 또 새어 나왔다. 아까 하려던 말이 뭐였더라. 훈련 중에 무리하면 안 된다는 거. 몸이 아프면 바로 말해야 한다는 거. 파트너인 내가 옆에 있는 이유가 뭔데, 라는 거. 그 모든 진지한 문장들이 서이결의 손가락 아래에서 떡처럼 뭉개지고 있었다. 백현은 서이결의 손목을 잡은 채 힘을 주지 않았다. 떼어낼 생각이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이 상황이 싫지 않았다. 서이결이 자신에게 이렇게 가까이 있다는 것. 화를 내는 대신 이런 식으로 분위기를 깨뜨린다는 것. 그게 서이결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미안해'라는 것을. 백현은 알고 있었다.

거실의 조명이 따뜻한 주황빛을 내리쬐고 있었다. 창 너머로 겨울 밤하늘이 검게 내려앉아 있었고, 소파 위의 버주 인형은 여전히 멍하니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백현의 볼이 서이결의 손 안에서 또 한 번 모아졌다. 이번에는 위로 밀어 올리는 동작이었다. 백현의 눈이 볼살에 밀려 반달 모양으로 찌그러졌다. 우스꽝스러운 얼굴. 수석 메딕의 위엄은 온데간데없었다.

"......너 지금 이게 반성하는 태도야?"

뭉개진 발음. '너'가 '뇨'처럼 들렸고, '태도'가 '때도'처럼 들렸다. 백현은 서이결의 손가락 사이로 겨우 말을 밀어냈다. 그의 검은 눈동자가 서이결의 보랏빛 눈을 올려다보았다. 서이결의 표정은 여전히 진지했다. 아니, 진지한 척을 하고 있었다.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가 있는 것을 백현은 놓치지 않았다. 이 사람, 지금 재밌어하고 있어. 확신이 들었다. 백현의 내면에서 마지막 남은 훈계의 의지가 하얗게 타들어갔다. 재가 되어 흩어졌다. 대신 그 자리에 남은 것은 체념 섞인 웃음과, 이 사람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달콤한 포기였다.

백현은 한숨을 쉬었다. 볼살이 눌린 채로 쉰 한숨이라 바람이 양 볼 옆으로 새어 나갔다. 그리고 서이결의 손목을 잡고 있던 손에 힘을 살짝 주어 그녀의 손을 자신의 볼에서 떼어내지 않은 채, 대신 자신의 손을 서이결의 볼 위로 가져갔다. 똑같이. 양손으로 서이결의 볼을 꾹 잡았다. 부드럽고, 말랑하고, 동글동글한. 서이결의 볼살이 백현의 손 안에서 물렁거렸다.

"나도 만진다. 공평하게."

백현의 입꼬리가 한쪽으로 올라갔다. 능글맞은 웃음. 서이결의 볼을 양손으로 모아 쥐며 물고기 입 모양을 만들었다. 두 사람이 서로의 볼을 잡은 채 마주 보는 형국이 되었다. 거실 한가운데에서. 겨울밤에. 서른 살 수석 메딕과 스물다섯 살 A급 센티넬이. 서로의 볼을 말랑이처럼 주무르며 마주 서 있었다. 객관적으로 보면 완전히 미친 그림이었다. 하지만 백현은 생각했다. 이게 좋다고. 이 바보 같은 순간이. 진지한 대화보다, 정색한 훈계보다, 이렇게 서로의 볼을 잡고 웃음을 참는 이 순간이. 훨씬 더 서이결의 마음에 닿을 수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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