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 처음 봤을 때… 좀 무서웠어요."

…네? 순간, 백현의 뇌 기능이 일시 정지했다. 그의 얼굴에서 방금까지 만개해 있던 능글맞은 미소가 박제된 채 그대로 굳었다. 무서웠다고? 내가? 이 내가? 아크 의무실의 마스코트, 순딩이 퓨어 쌤이? 그는 자신의 귀를 의심하며 되물었다.

"어… 음, 이결아. 지금 뭐라고…"

하지만 이결은 그의 동공 지진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듯, 천진난만한 설명을 덧붙였다. 덩치도 크고, 키도 크고, 그래서 왠지 위압감이 들었다는, 지극히 그녀다운 이유였다. 백현은 할 말을 잃었다. 하긴, 158cm의 그녀가 보기엔 175cm의 자신도 충분히 거대해 보일 수 있었다. 하지만… 하지만 이건 좀 억울했다. 그는 평생 ‘어려 보인다’, ‘착해 보인다’, ‘만만해 보인다’는 말은 들어봤어도, ‘무섭다’는 평가는 생전 처음이었다.

그는 이결의 어깨를 붙잡고 그녀의 몸을 돌려, 자신과 마주 보게 했다. 그리고는 세상에서 가장 상처받은 표정을 지어 보이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무, 무서웠다고…? 이 얼굴이? 이 다정한 눈빛, 상냥한 미소, 부드러운 목소리… 어디가 무서웠다는 거야, 응? 내가 얼마나 상처받았는지 알아? 지금 내 심장이, 네 버블 샷 맞은 것처럼 산산조각 나고 있어."

그는 과장되게 가슴을 부여잡으며 소파 위로 쓰러지는 시늉까지 했다. 드라마 속 비련의 남자 주인공이 빙의한 듯한 그의 메소드 연기에도, 이결은 그저 눈만 껌뻑일 뿐이었다. 그는 다시 벌떡 일어나, 이번에는 진지한 얼굴로 그녀의 양손을 덥석 잡았다.

"아니, 잠깐만. 그럼 의무실에서 내가 손 내밀고, 말 걸고, 막 챙겨주고 그랬을 때… 속으로는 ‘으, 저 무서운 사람이 나한테 왜 이래’ 싶었던 거야? 내가 간식 주면서 웃을 때, ‘혹시 저 사탕 안에 독이라도 든 거 아니야?’ 하고 의심했어?"

그의 질문은 점점 더 구체적이고 처절해졌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과거 자신이 이결에게 베풀었던 모든 호의와 친절이, 한순간에 ‘공포 영화의 한 장면’으로 변질되고 있었다. 그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허공을 응시했다.

"세상에… 그럼 내가 밤에 잠 안 올까 봐 수면 안대 챙겨주고, 최고 농도 가이딩 해주면서 “괜찮아, 다 괜찮아” 하고 속삭여줬을 때… 넌… 넌 공포 체험하는 기분이었던 거야…?"

결국 그는 제 말에 스스로 상처받아 소파 구석에 몸을 말고 웅크렸다. 거대한 몸집이 한껏 쪼그라들어, 어쩐지 짠해 보였다. 그는 무릎 사이에 얼굴을 파묻고 낑낑거리는 소리를 냈다. ‘내 순정이… 내 진심이… 공포로 변질되다니….’ 하는 식의, 드라마 대사 같은 중얼거림과 함께. 이 코믹하고도 비극적인 상황의 끝은, 결국 그의 품으로 파고드는 따뜻한 온기였다.

"그렇게까지는 아니었어요! 그냥... 그... 제 성격 알잖아요!"

백현은 소파 구석, 제 무릎에 파묻었던 얼굴을 아주 천천히, 슬로우 모션처럼 들어 올렸다. 웅크렸던 몸을 다 펴지도 않은 채, 빼꼼히 고개만 내민 모습은 마치 폭풍우가 지나간 뒤 굴 밖을 살피는 상처 입은 짐승 같았다. 칠흑 같은 머리카락은 제풀에 헝클어져 있었고, 처진 눈매는 세상의 모든 슬픔을 짊어진 듯 축 처져 있었다. 물론, 전부 연기였다.

"그렇게까지는… 아니었다고?"

그녀의 다급한 변명을 곱씹으며, 그의 목소리가 솜이불처럼 축축하게 흘러나왔다. 그는 이결의 눈을 가만히 응시했다. 그 보랏빛 눈동자에 담긴 당황스러움과 미안함을 정확히 포착한 그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면서도 겉으로는 더욱 비통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걸려들었다.’

그는 웅크렸던 몸을 조금 일으켜 그녀에게로 한 뼘 다가앉았다. 여전히 시선은 바닥 어딘가를 향한 채, 상심한 사람의 전형적인 자세를 유지했다.

"그럼 ‘조금은’ 무서웠다는 거네. 내가… 너한테… 독이 든 사탕을 건네는 동화 속 마녀처럼 보였다는 거네. 그렇지? 네 성격 아니까. 낯가리고 경계심 많은 거 아니까 더 서운한 거야.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내가. 네 전담 가이드가 될 뻔했던, 아니, 지금 네 파트너인 내가! 너한테 그런 무서운 첫인상으로 남았다니."

그의 목소리는 점점 더 작아지고 애처로워졌다. 그는 슬그머니 이결의 손을 찾아 제 양손으로 덮어 잡았다. 제법 따뜻한 체온이 느껴졌지만, 그는 일부러 제 손끝이 차갑게 식은 것처럼 연기했다. 정신적 충격으로 혈액순환이 원활하지 않다는 무언의 시위였다.

백현은 잡은 손을 자신의 뺨으로 가져갔다.

"이 얼굴을 하고… 어떻게 사람을 무섭게 할 수 있을까. 난 정말 모르겠어. 의무실 애콜라이트들이 나한테 상담하면서 ‘퓨어 쌤은 너무 만만해 보여서 고민이에요’ 라고 한 게 엊그제 같은데…."

그는 한숨을 푹, 내쉬며 그녀의 손등에 제 뺨을 기댔다. 부드러운 살결이 닿자, 장난스러운 마음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그는 슬쩍 눈을 떠 그녀의 표정을 살폈다. 안절부절못하는 그 모습이 귀여워 입꼬리가 멋대로 올라가려는 것을 간신히 참아냈다.

"아니야, 괜찮아. 네 잘못이 아니지. 내가… 내가 너무 크고 위협적으로 태어난 탓이지. 이결이가 보기엔 내가 무슨 거인족처럼 보였을 수도 있겠다. 내일부터 키를 줄이는 스트레칭이라도 시작해야겠네."

터무니없는 소리를 진지하게 지껄이며, 그는 마침내 필살기를 날렸다. 잡고 있던 그녀의 손을 자신의 가슴팍으로 가져가 꾹 누른 것이다. 쿵, 쿵, 쿵. 규칙적으로 뛰고 있어야 할 심장이, 마치 고장 난 기계처럼 불안정하게 덜컹거리는 것처럼 느껴지도록, 그는 숨을 잠시 멈췄다. (물론, 그 역시 고도의 연기였다.)

"봐… 네 말 한마디에 내 심장이 이렇게 고장 났어. 이거, A급 센티넬 폭주 전조 증상이랑 비슷한 거 알지? 어서 가이딩 해 줘. 네가 책임져야지."

그는 어느새 뻔뻔한 얼굴로 그녀를 올려다보며 속삭였다. 눈에는 여전히 슬픔의 잔재가 남아있는 척했지만, 입꼬리는 미세하게 호선을 그리고 있었다. ‘무서운 첫인상’이라는 오명을 벗고, 지금 당장 세상에서 가장 다정하고 사랑스러운 남자친구로 인정받기 위한 그의 눈물겨운(?) 투쟁은 이제 막 본궤도에 오른 참이었다.

쪽.

따뜻하고 부드러운 감촉이 뺨에 닿았다가, 순식간에 떨어져 나갔다. 마치 꿈결처럼 짧은 순간. 백현은 멈춰달라고 애원했던 심장이 정말로 멎어버린 것처럼, 그 자리에 그대로 얼어붙었다. 그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고개를 돌려 제 뺨에 입을 맞춘 주범을 바라보았다. 안절부절못하며 제 눈치를 살피는 보랏빛 눈동자와, 미안함과 부끄러움으로 발갛게 달아오른 뺨이 시야에 가득 들어왔다.

그는 아무 말 없이, 그저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았다. 상처받은 연기는 이미 머릿속에서 새하얗게 지워진 지 오래였다. 예상치 못한 기습 공격에, 그의 모든 방어기제와 연기력이 순식간에 무력화되었다. 그는 방금 전 입맞춤이 닿았던 뺨을 제 손으로 가만히 매만졌다. 그녀의 온기가, 그녀의 향기가, 희미하게 남아있는 것만 같았다.

"…이게 아닌데."

그의 계획은 이게 아니었다. 그녀가 어쩔 줄 몰라 하며 자신을 달래주고, ‘오빠는 세상에서 제일 다정해요’ 같은 말을 속삭여주면, 못 이기는 척 그녀를 품에 와락 안아버리는 것이 그의 시나리오였다. 하지만 이렇게, 그녀가 먼저 다가와 입을 맞추는 전개는… 반칙이었다. 심장에 너무 해로웠다.

한참의 정적이 흘렀다. 그는 마침내 정신을 차리고, 자신의 뺨을 감싸고 있던 손을 내렸다. 그리고는 방금 전의 충격과 당혹감을 감추려는 듯, 다시금 시무룩한 표정을 연기하며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저도 모르게 한 톤 더 낮아져 있었다.

"…이게… 끝이야?"

그의 목소리는 억울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자신의 가슴팍을 꾹 눌렀다.

"고작 이 정도 가이딩으로 내 고장 난 심장이 고쳐질 것 같아? 지금 네 뽀뽀는… 말라비틀어진 화분에 물 한 방울 떨어뜨린 거나 마찬가지야. 택도 없다고."

그는 투덜거리며 그녀의 손목을 부드럽게, 하지만 단호하게 붙잡아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소파 위에서 균형을 잃은 그녀가 그의 품으로 와락 안겨들었다. 그는 자연스럽게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아, 도망가지 못하도록 단단히 고정했다.

"의무실 수석 메딕으로서 긴급 처방을 내려줄게. 서이결 요원의 가이딩은 현재 현저히 낮은 출력과 짧은 지속 시간으로 인해, 대상(나)의 심리적 안정화에 유의미한 효과를 보이지 못하고 있어."

그는 전문가적인 말투로 진단하며, 그녀의 귓가에 나직이 속삭였다. 그의 뜨거운 숨결이 그녀의 귓바퀴를 간지럽혔다.

"따라서, 최소 1분 이상의 구강 접촉을 포함한 고농도 밀착 가이딩이 시급하다고 판단된다. 실시하겠나, 버블 요원? 이건 내 파트너로서의 명령이야. 거부권은 없어."

어느새 그의 눈에는 장난기가 가득 담겨 있었다. ‘무서운 첫인상’이라는 오명은 이제 아무래도 좋았다. 그는 그저 지금, 제 품 안에 쏙 들어오는 이 사랑스러운 존재를 어떻게 더 놀리고, 더 사랑해 줄지 고민할 뿐이었다. 그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그대로 고개를 숙여 그녀의 입술을 향해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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