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관 잠금장치가 삐, 하고 해제되는 소리가 들렸다. 이어서 문이 열리는 소리, 신발이 벗겨지는 소리, 그리고 평소보다 확연히 무거운 발걸음이 복도를 따라 거실로 향했다. 백현이었다. 다만, 평소의 백현은 아니었다. 평소라면 현관을 열자마자 왔어~라는 나긋한 인사가 먼저 날아올 텐데, 오늘은 그 한마디조차 생략된 채 묵직한 발소리만이 그의 존재를 알렸다. 그의 가이드 제복 상의는 단추 두 개가 풀려 있었고, 넥타이는 목에 걸려 있다기보다 어깨에 얹혀 있다는 표현이 더 정확했다. 새하얀 제복이 구겨진 적은 없었는데, 오늘은 등 뒤로 미세한 주름이 잡혀 있었다. 그의 흑발도 평소처럼 단정하지 않았다. 앞머리가 이마 위로 흐트러져 있었고, 눈 밑에는 하루 종일 쌓인 피로가 옅은 그림자처럼 내려앉아 있었다.

그는 거실까지 걸어오더니, 아무런 전조 없이 소파에 몸을 떨어뜨렸다. 푹, 하는 소리와 함께 쿠션이 깊이 눌렸다. 그는 고개를 뒤로 젖혀 소파 등받이에 기대고, 눈을 감았다. 천장을 향해 올려진 그의 턱선이 주방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에 연하게 윤곽을 드러냈다. 몇 초간의 침묵. 그의 가슴이 길게, 깊게, 한 번 올라갔다가 내려왔다. 마치 하루 종일 참아왔던 한숨을 이제야 뱉어내는 것처럼. 그의 손가락이 느슨하게 넥타이 매듭을 풀어 옆으로 던졌다. 실크 천이 소파 팔걸이에 걸렸다가 바닥으로 미끄러져 내렸지만, 그는 줍지 않았다. 그냥 그대로 두었다. 평소 먼지 하나 없이 깔끔한 그가. 그것만으로도 오늘의 피로도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었다.

"…아."

그는 눈을 감은 채로, 짧게 소리를 냈다. 인사인지, 한숨인지, 아니면 그냥 살아있다는 증거인지 모호한 그 한 음절 뒤에, 몇 박자의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나서야 그의 입이 제대로 열렸다. 목소리에는 평소의 나긋한 여유 대신, 약간 갈라진 피로가 묻어 있었다.

"이결아, 나 오늘 좀 미안한데. 5분만 이대로 있어도 돼? 아니, 3분. 3분이면 충분해. 그 다음에 밥 먹자."

그는 눈을 뜨지 않은 채로 한 손을 들어 올려, 허공에서 손가락 세 개를 펼쳐 보였다. 3분. 그 손이 다시 무기력하게 내려앉았다. 소파 쿠션 위로 떨어진 그의 손등 위로 희미하게 남아있는 비누향이, 하루 종일의 소독약 냄새와 섞여 묘한 잔향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의 입꼬리가 아주 미세하게, 거의 티도 안 나게 올라갔다. 지친 와중에도 습관처럼 웃어보이는 것. 그것이 이 남자의 직업병이었다.

"오늘 B급 두 명이랑 A급 한 명, 연달아 징후가 터졌는데. A급 불속성이 문제였어. 체온이 42도까지 올라가서 접촉 가이딩으로 안 잡혀. 결국 고농도까지 갔거든. 밴스 형이 조퇴하라고 했는데, 뒤에 대기 인원이 없으니까 그냥 버텼지. 근데 이제 좀 후회가 되네."

그는 마지막 문장에서 스스로를 비웃듯 짧게 코웃음을 쳤다. 서른 살의 수석 메딕이 체력 관리 실패를 자인하는 순간이었다. 그의 손가락이 소파 팔걸이를 천천히 두드렸다. 불규칙한 리듬. 졸음과 의식 사이를 오가는 사람의 템포였다. 거실에 놓인 간접조명이 그의 얼굴 위로 부드러운 주황빛을 드리우고 있었고, 그 빛 아래에서 그의 처진 눈매가 평소보다 더 깊어 보였다. 이십대의 체력이었다면 이 정도쯤은 샤워 한 번이면 풀렸을 텐데, 하는 생각이 그의 머릿속을 스쳤다. 서른이라는 숫자가 갑자기 실감 나는 밤이었다.

"오늘도 수고 많았어요, 오빠. 5분이 아니라 원하는 만큼 쉬어요."

그녀의 팔이 그의 몸을 감싸는 순간, 백현의 어깨에서 무언가가 뚝, 하고 떨어져 나갔다. 비유가 아니었다. 하루 종일 그의 등뼈를 지탱하고 있던 긴장이라는 이름의 강철 와이어가, 그녀의 체온이 닿자마자 녹슨 것처럼 끊어져 버린 것이다. 그의 몸이 미세하게 기울었다. 소파 등받이가 아니라, 그녀 쪽으로. 의식적인 움직임이 아니었다. 그냥 중력이 방향을 바꾼 것 같았다. 하루 종일 42도의 열기를 품은 센티넬의 파장과 싸우느라 달궈져 있던 그의 감각이, 그녀에게서 전해오는 시원한 소다향의 청량함에 닿자 마치 사막에 비가 내리듯 서서히 식어갔다. 그의 감겨 있던 눈꺼풀이 가늘게 떨렸다. 코끝에 닿는 그녀의 머리카락에서 나는 샴푸 냄새가, 소독약과 땀과 타인의 체온으로 범벅이 된 그의 후각을 한 겹씩 씻어내고 있었다.

"…원하는 만큼이라니. 그런 말 하면 진짜로 안 일어날 수도 있는데."

그는 눈을 감은 채로 낮게 웃었다. 목소리가 갈라져 있었지만, 그 안에 깃든 온기는 진짜였다. 그의 고개가 천천히 옆으로 기울어, 그녀의 정수리 위에 가볍게 얹혔다. 무게를 실은 것이 아니라, 그저 닿아 있고 싶은 것. 그의 오른손이 무기력하게 올라와 그녀의 등 위에 놓였다. 토닥이려는 의도였겠지만,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그냥 손바닥이 그녀의 등에 살포시 얹힌 채로 멈춰 있었다. 그 손의 온도가 평소보다 약간 높았다. 하루 종일 불속성 센티넬의 열기를 받아낸 잔열이, 아직 그의 피부 아래에 옅게 남아 있었다.

"고마워, 이결아. 근데 있잖아. 오늘 가이딩하면서 생각했어. 불속성 센티넬 체온이 42도면 뇌 손상 경계인데, 접촉 가이딩 포인트를 경추 7번하고 흉추 1번 사이에 잡으면 파장 침투율이 제일 높거든. 근데 그 사람이 열이 너무 높아서 손을 대는 것만으로도 화상 위험이 있단 말이야. 그래서 냉각 거즈를 사이에 끼우고 했는데."

문장이 거기서 끊겼다. 짧은 침묵. 그리고 그가 스스로 피식, 하고 웃는 소리가 들렸다. 눈을 감은 채로, 그녀의 머리카락 사이에 코를 묻은 채로.

"아, 미안. 지금 이게 무슨 퇴근 후 업무 보고도 아니고. 습관이 나왔네. 닥터 밴스 형이 이 모습 봤으면 또 '백현아, 너는 퇴근이라는 개념을 모르냐'라고 잔소리했을 거야."

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자조적인 듯하면서도 어딘가 편안한 웃음. 그는 그녀를 안은 팔에 미세하게 힘을 주었다. 그것이 그가 지금 낼 수 있는 최대의 힘이었다. 거실의 간접조명이 두 사람 위로 주황빛을 드리우고 있었고, 창 밖에서는 11월의 차가운 바람이 유리창을 가볍게 두드리고 있었다. 소파 밑에 아까 떨어진 넥타이가 실크의 윤기를 잃은 채 구겨져 있었지만, 그는 그것을 줍겠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지금 이 순간, 그의 세계는 자신의 옆구리에 달라붙어 있는 작은 체온 하나로 충분했다. 그의 손가락이 아까보다 조금 더 힘을 얻어, 그녀의 등을 느리게 쓸어내렸다. 한 번. 두 번. 세 번째에서 동작이 멈추더니, 그의 호흡이 조금 더 깊어졌다.

"다 들어줄게요, 오빠."

다 들어줄게요, 라는 말이 그의 귓속으로 스며든 순간, 백현의 감겨 있던 눈이 천천히 열렸다. 반쯤 풀린 초점이 아래를 향했다. 그녀가 올려다보고 있었다. 자신의 품 안에서, 동그란 보랏빛 눈동자를 가득 채운 걱정과 다정함이 뒤섞인 그 시선이, 주방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백현은 그 눈을 마주하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1초, 2초. 하루 종일 센티넬들의 파장을 읽고, 접촉 포인트를 계산하고, 냉각 거즈의 교체 타이밍을 초 단위로 재던 그 날카로운 머리가, 지금은 완전히 하얗게 비어 있었다. 그녀의 눈동자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구겨진 제복, 흐트러진 머리카락, 피로에 절은 얼굴. 대단히 볼품없는 꼴이었다. 그런데도 그녀는 자신을 올려다보며 다 들어주겠다고 했다. 그 사실이 백현의 흉골 뒤쪽 어딘가를 뭉클하게 눌렀다.

"…이결아."

그의 목소리가 낮게 흘러나왔다. 평소의 나긋한 톤이 아니었다. 피로에 갈라지고, 거기에 감정이 한 겹 더 얹혀져 약간 쉰 듯한 음색. 그의 손이 올라왔다. 아까까지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이 없다더니, 그녀의 뺨에 닿는 동작만큼은 어떻게든 해냈다. 손바닥이 아니라 손등으로. 힘이 없어서 뒤집을 여유조차 없었던 것이다. 손등의 마디가 그녀의 볼을 스치듯 지나갔다. 따뜻했다. 불속성의 잔열이 아니라, 그냥 이 남자 고유의 체온이었다.

"너 그런 말 하면 안 돼. 진짜로 다 쏟아낼 수도 있어. 오늘 센티넬 체온 잡으면서 냉각 거즈 17장 갈았다든가, 밴스 형이 회의 중에 커피 엎질러서 의무실 전체가 카페인 냄새로 도배됐다든가, 점심을 오후 3시에 편의점 삼각김밥으로 때웠다든가."

그는 한 문장 한 문장을 늘어놓으며, 목소리에 조금씩 평소의 리듬이 돌아오고 있었다. 마치 그녀의 체온이 그의 성대까지 녹여내는 것처럼. 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자조적인 것이 아니라, 진짜로 우스워서 웃는 얼굴이었다. 거실의 간접조명이 그의 풀린 눈매 위로 부드러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고, 그 아래에서 그의 시선은 여전히 그녀를 향하고 있었다. 올려다보는 그녀의 시선과, 내려다보는 그의 시선이 만나는 지점에서, 두 사람 사이의 공기가 조용히 따뜻해졌다.

"근데 있잖아. 솔직히 말하면."

그의 손등이 그녀의 뺨에서 떨어졌다가, 이번에는 손바닥을 뒤집어 그녀의 턱선을 부드럽게 감쌌다. 힘은 없었지만 방향만큼은 정확했다. 그녀의 시선을 자신에게 고정시키듯, 검지가 귓불 아래를 가볍게 쓸었다.

"하루 종일 다른 사람들 파장 잡아주면서 생각했어. 아, 나도 누군가한테 이렇게 안기고 싶다. 누군가한테 괜찮다는 말을 듣고 싶다. 근데 그 '누군가'가 딱 한 명밖에 없어서 큰일이야, 진짜."

그는 말을 마치고, 눈을 반쯤 감았다. 피곤한 것이 아니라, 그저 그녀의 온기를 오감으로 느끼고 싶어서. 소파 쿠션이 두 사람의 무게를 받아 깊이 눌려 있었고, 창밖에서 불어오는 11월의 바람이 이중 유리창을 가볍게 두드리는 소리가 배경음처럼 깔렸다. 그의 호흡이 천천히, 규칙적으로 안정되어 가고 있었다.

"오빠"
"제 품은 언제나 오빠한테 열려있어요."

제 품은 언제나 오빠한테 열려있어요. 그 문장이 그의 귓속에서 울렸다. 한 번. 두 번. 세 번째에서, 백현의 감겨 있던 눈꺼풀 아래로 뭔가가 뜨겁게 차올랐다. 울컥, 이라고 부르기엔 과장이고, 그냥 목 안쪽이 뻐근해지는 감각이었다. 하루 종일 '괜찮아요'를 입에 달고 살았다. A급 불속성 센티넬의 이마에 냉각 거즈를 갈아 끼우면서도 괜찮아요. B급 두 명의 접촉 가이딩을 연달아 끝내고 나서도 괜찮아요. 밴스가 퇴근하라고 눈을 부라릴 때도 괜찮습니다, 형. 그런데 지금, 이 작은 사람이 올려다보며 '열려있어요'라고 말하는 순간, 그 단어의 무게가 전부 돌아왔다. 괜찮지 않았다. 오늘 하루, 단 한 번도.

그가 움직였다. 느리게, 그러나 분명하게. 아까까지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이 없다던 남자의 양팔이 그녀의 허리를 감쌌다. 끌어당긴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기울어진 것이다. 그의 이마가 그녀의 어깨와 목이 만나는 지점에 닿았고, 콧날이 쇄골 위를 스치며 거기에 멈췄다. 그녀의 실내복 천에서 올라오는 소다향이 코끝을 적셨다. 시원하고 청량한, 그 익숙한 냄새. 42도의 열기와 소독약으로 범벅이던 하루가, 이 한 가지 향기 앞에서 저 먼 곳으로 밀려났다. 그의 팔에 미세한 힘이 들어갔다. 떨림이라고 부르기엔 작고, 포옹이라 부르기엔 조금 더 절실한 강도. 그의 숨결이 그녀의 목덜미 위로 따뜻하게 번지고 있었다.

"…너 진짜."

그의 목소리가 그녀의 어깨에 묻혀 나왔다. 웅얼거림에 가까웠다. 잠시 말이 끊겼다가,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나 있잖아, 이결아. 하루 종일 센티넬들한테 '괜찮아질 거예요'라고 말하면서, 정작 나한테는 아무도 안 물어봐. 너 괜찮냐고. 나도 안 물어보고. 스스로한테도."

그의 입술이 그녀의 쇄골 위, 실내복 천에 닿은 채로 움직이고 있었다. 말의 진동이 그녀의 피부로 전해졌다.

"근데 너는 안 물어봐도 돼. 물어보는 대신 그냥 안아주잖아. 다 들어준다고 하잖아. 그게 얼마나 대단한 건지. 아마 너는 모를 거야."

그가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어깨에서 얼굴을 떼고, 내려다보았다. 그의 검은 눈동자가 피로에 젖어 있었지만, 그 안에 깃든 빛은 분명했다. 따뜻하고, 젖어 있고, 확신에 차 있는. 간접조명의 주황빛이 그의 풀린 눈매 위로 부드러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그의 손이 올라와 그녀의 하늘빛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귀 뒤로 넘어가는 웨이브 사이로 손가락이 빠져나가며, 그의 검지가 귓불을 가볍게 스쳤다. 의도한 건지 아닌지 모를 접촉이었다. 그는 그녀의 이마 위, 가르마가 갈라지는 지점에 입술을 가만히 얹었다. 오래. 3초보다 길고, 10초보다는 짧은 시간. 그 입술이 떨어졌을 때, 그의 눈이 반달 모양으로 휘어졌다.

"그래서 말인데. 오늘은 좀 이대로 있자. 아무것도 안 하고. 아무 생각도 안 하고. 너한테 안겨서. 내일의 백현이 알아서 할 거야, 나머지는."

그의 입꼬리에 장난기가 아주 연하게, 아주 조금 돌아오기 시작했다. 소파 밑에 떨어진 넥타이가 여전히 구겨진 채 방치되어 있었고, 창밖에서 11월의 바람이 유리창을 두드리는 소리가 배경음처럼 깔렸다. 그의 손가락이 그녀의 귀 뒤를 천천히 쓸고 있었다.

시간이 흘렀다. 얼마나 흘렀는지는 둘 다 모른다. 5분인지 15분인지. 거실의 간접조명이 자동 감지 모드로 전환되었는지 한 단계 더 어두워져 있었고, 소파 위의 두 사람 위로 드리운 빛은 이제 거의 촛불에 가까운 농도였다. 창밖의 바람 소리만이 규칙적으로 유리창을 두드리고 있었다. 백현의 호흡이 달라져 있었다. 아까까지의 불규칙하고 얕던 숨결이, 지금은 조수처럼 일정한 리듬을 찾아가고 있었다. 그의 코끝이 그녀의 목덜미에 닿아 있었고, 내쉬는 숨이 쇄골 아래를 간지럽게 스쳤다. 그의 팔은 여전히 그녀의 허리를 감싸고 있었지만, 힘의 밀도가 바뀌어 있었다. 절실함이 빠지고, 그 자리에 축축한 안도감이 채워진 느낌.

"…이결아."

그의 목소리가 그녀의 목덜미에서 진동으로 전해졌다. 반쯤 잠에 빠진 사람의 음성이었다. 자음과 모음의 경계가 흐릿하게 녹아 있었고, 그 안에 깃든 감정은 오히려 그래서 더 여과 없이 드러났다.

"배달. 시켜야 하는데."

말은 그렇게 했지만, 몸은 전혀 움직일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그의 이마가 그녀의 어깨에 더 깊이 파고들었다. 제복 상의의 구겨진 옷깃이 그녀의 실내복에 스치며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의 손가락이 그녀의 허리 뒤에서 아주 느리게, 거의 무의식적으로 원을 그리고 있었다. 한 바퀴를 완성하는 데 10초쯤 걸리는 속도. 그것마저 점점 느려지고 있었다.

백현의 의식이 수면의 경계를 오가고 있었다. 그녀의 심장 소리가 그의 귀에 닿아 있었다. 규칙적이고, 차분하고, 확실한 박동. 살아 있다는 증거. 여기에 있다는 증거. 하루 종일 타인의 파장을 읽느라 과부하가 걸렸던 그의 감각이, 지금은 오직 하나의 파장만을 감지하고 있었다. 시원하고, 맑고, 탄산수처럼 톡 쏘는 듯하면서도 부드러운. 그녀의 것. 소파 쿠션이 두 사람의 무게에 깊이 눌려 있었고, 커피 테이블 위에는 아직 켜지지도 않은 백현의 핸드폰이 배달 앱을 열기도 전에 방치되어 있었다.

"…5분만 더."

그는 중얼거렸다. 아까도 5분이라고 했다. 그때의 5분은 벌써 20분을 넘겼다. 이번의 5분도 아마 같은 운명이 될 것이었다. 그의 입술이 그녀의 목덜미에 닿은 채로 아주 희미하게 올라갔다. 잠과 현실 사이에 걸친 사람의 미소였다. 그의 손가락이 허리 뒤에서 멈췄다. 원을 완성하지 못한 채.

거실에 남은 소리는 창밖의 바람과, 두 사람의 호흡뿐이었다. 백현의 숨결이 점점 더 깊어지고 있었다. 그의 몸무게가 그녀에게 온전히 실리기 시작했다. 175센티미터의, 하루 종일 남들을 돌보느라 정작 자신은 돌보지 못한 남자의 무게가. 무겁지 않았다. 아니, 무거웠을 것이다. 물리적으로는. 하지만 그 무게는 신뢰의 무게였고, 내려놓음의 무게였고, '너한테는 이래도 된다'는 무언의 고백이었다. 소파 밑의 넥타이는 여전히 구겨진 채 내일 아침의 백현을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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