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에는 없지만
기억에는 남는 순간들
제복을 입은 백현 말고, 그 아래 사람 백현을 몰래 찍어 모은 롤 하나. 의무실 밖에서, 숙소에서, 버블 옆에서만 드러나는 표정과 버릇 50컷을 현상했다.
쉬는 날, 숙소 소파에 늘어져 리모컨을 찾지 못해 한참 투덜거리다가 결국 포기하고 스마트폰으로 주말 드라마 몰아보기.
저녁 메뉴를 정할 때 세상 진지한 표정으로 배달 앱 리뷰를 30분 넘게 정독한다. (별점 4.5 이하는 쳐다보지도 않음)
가끔 요리하다가 프라이팬에 기름이 튀면 '앗, 뜨거!'하고 어린애처럼 폴짝 뛴다.
버블이 사준 우스꽝스러운 동물 잠옷을 입고 숙소 안을 돌아다니며 만족스러워한다.
냉장고에 종류별로 탄산음료를 채워놓고, 버블이 하나씩 꺼내 마실 때마다 뿌듯한 표정으로 지켜본다.
매운 음식을 잘 먹는 척하지만, 사실은 땀을 뻘뻘 흘리며 물을 벌컥벌컥 마신다. (그리고 버블에겐 안 매운 척한다)
샤워 후,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대충 털기만 하고 나와 버블에게 잔소리를 듣는다.
장을 보러 갔을 때, 버블이 좋아할 만한 새로운 맛의 간식이 보이면 자기도 모르게 장바구니에 담는다.
숙소 대청소를 하는 날, 버블 몰래 버리려던 낡은 인형이나 물건들을 버블에게 들키면, 어쩔 수 없다는 듯 다시 제자리에 돌려놓는다.
퇴근하고 돌아와 현관문을 열었을 때, 맛있는 냄새 대신 탄 냄새가 나면 한숨부터 쉬는 게 아니라 "우리 이결이, 저녁 하다가 전쟁이라도 치렀어?" 하고 웃으며 들어온다.
의무실에서 후배 메딕들이 연애 상담을 해오면, 진지하게 들어주다가 꼭 마지막엔 "그래서 스킨십은 어디까지 갔는데?" 하고 짓궂게 묻는다.
닥터 밴스에게 잔소리를 하다가도, 그가 피곤해 보이면 말없이 책상 위에 영양제와 커피를 두고 사라진다.
자이안과 복도에서 마주치면 유치한 농담 따먹기를 하다가 지나가던 요원과 눈이 마주치면 언제 그랬냐는 듯 근엄한 '퓨어 쌤' 표정으로 돌아온다.
가끔 의무실 컴퓨터로 업무 자료를 찾는 척하며 새로 나온 자동차 모델을 구경한다.
서류 작업 중 실수가 발견되면, 아무도 보지 않는데도 혼자 "아, 진짜 백현아..." 하고 자책한다.
의무실 캐비닛 깊숙한 곳에 종류별 컵라면과 즉석밥을 비상식량으로 쟁여두었다. (닥터 밴스에겐 비밀)
아주 가끔, 피곤에 절어 잠들었을 때 어린 시절의 꿈을 꾸고 잠꼬대를 한다. (주로 간호사 실습 시절 이야기)
가끔 의무실에서 신입 요원들이 쩔쩔매는 모습을 보면, 자신의 신입 시절을 떠올리며 슬쩍 다가가 힌트를 주거나 도와준다.
세면대 거울에 김이 서리면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나 하트를 그렸다가, 이내 민망해하며 황급히 지운다.
비 오는 날, 창밖을 보며 센티넬 시절의 오래된 팝송을 낮게 흥얼거린다. 가사는 틀릴 때가 많다.
버블에게 선물 받은 수달 인형 '버주'의 털이 뭉치면 전용 빗으로 정성껏 빗겨준다.
버블이 요리를 하겠다고 부엌에 서면, 불안한 눈빛으로 곁을 맴돌며 "소금은 그만...", "불은 약하게..." 하고 조마조마하게 코칭한다.
퇴근 후 지친 몸으로 소파에 쓰러지듯 누워 있다가, 버블이 다가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벌떡 일어나 팔을 벌린다.
생각에 잠길 때 자신도 모르게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규칙적으로 톡, 톡, 두드리는 버릇이 있다.
버블이 삐지거나 토라지면 어떻게 풀어줘야 할지 몰라 안절부절못하며 주변을 맴돈다.
함께 영화를 보다가 슬픈 장면이 나오면, 울지 않는 척 시치미를 떼며 괜히 팝콘을 와삭와삭 씹는다.
버블이 아프다고 엄살을 부리면, 다 알면서도 세상에서 가장 심각한 표정으로 "어디, 어디가 얼마나 아픈데?" 하고 속아준다.
다른 센티넬이 버블에게 친근하게 말을 걸면, 대화에 끼어들지는 않지만 시선은 두 사람에게 고정된다.
버블에게 사소한 거짓말을 했다가 금방 표정에서 들켜버리고, 멋쩍게 웃으며 사실대로 실토한다.
기념일에 서프라이즈 이벤트를 계획하지만, 매번 어설픈 구석이 있어 버블에게 금방 간파당한다.
버블의 사촌 언니인 '아셔'가 밴스와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보면, 못 말린다는 듯 웃으면서도 슬쩍 밴스의 편을 들어준다.
버블이 좋아하는 아이돌이나 배우가 TV에 나오면, 관심 없는 척하면서도 슬쩍 누구인지 검색해 본다.
버블의 동생 이한과 만났을 때, 어색하지 않게 대화를 이끌어가려고 평소보다 더 유머러스한 모습을 보여주려 애썼다.
버블이 "오빠는 늙지도 않네"라고 장난치면, 입으로는 "너도 마찬가지야"라고 하면서도 하루 종일 기분이 좋다.
버블과 다툰 날이면, 먼저 사과하고 싶지만 타이밍을 놓쳐 끙끙 앓다가 결국 버블이 좋아하는 음식을 사 들고 와서 슬쩍 내민다.
칭찬, 특히 "오빠 멋있다"는 말에 약해서 겉으로는 태연한 척하지만 귀 끝이 빨개진다.
버블의 머리카락을 말려줄 때, 다 마른 후에도 한참 동안 손가락으로 머리칼을 빗어 내리며 부드러운 감촉을 즐긴다.
버블의 손을 잡고 걸을 때, 자신도 모르게 손가락으로 버블의 손바닥을 간질이는 버릇이 있다.
버블이 입었던 옷에서 나는 소다향을 맡으며 안정감을 느낀다.
가이딩이 아닌 평범한 스킨십, 예를 들어 그냥 손을 잡거나 어깨에 기댈 때 더 두근거려 한다.
버블이 훈련으로 지쳐 돌아온 날이면, 말없이 욕조에 따뜻한 물을 받아놓고 입욕제를 풀어둔다.
서류 더미에 파묻혀 있다가, 문득 버블의 얼굴이 보고 싶어지면 의미 없는 핑계를 대고 영상 통화를 건다. (예: "이결아, 혹시 내 책상 위에 파란색 펜 못 봤어?")
이른 아침, 잠든 버블의 얼굴을 한참 동안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조심스럽게 이마에 입을 맞추고 출근 준비를 시작한다.
버블과 함께 있을 때, 다른 사람이 다가와 말을 걸면 자신도 모르게 버블의 허리를 감싸거나 어깨에 손을 올린다.
버블이 임무 중에 조금이라도 다쳐서 돌아오면, 치료하는 내내 괜찮다고 말하면서도 평소보다 몇 배는 더 꼼꼼하게 살피고 잔소리가 길어진다.
자신의 제복 주머니 안에 항상 버블이 좋아하는 작은 사탕이나 초콜릿을 한두 개씩 넣고 다닌다.
버블이 예전에 좋아했던, 지금은 단종된 음료수를 구하기 위해 비번 날 온 동네 마트를 뒤지고 다닌 적 있다.
자신의 의사 가운이나 제복을 버블이 입고 있으면, 크기가 맞지 않아 헐렁한 그 모습이 귀여워서 사진으로 남겨두고 싶어 한다.
늦은 밤, 의무실에서 홀로 야근을 하다가 창밖을 보며 버블과의 미래를 상상하곤 한다. (바다 여행, 평범한 주말 데이트 같은 것들)
함께 잠자리에 누웠을 때, 잠든 버블이 뒤척이다가 자신을 꽉 껴안으면, 잠이 다 깨버려도 그냥 그 자세 그대로 아침까지 있어 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