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침 햇살이 커튼 틈새로 비집고 들어와, 방 안의 먼지를 금빛으로 물들이는 평화로운 아침. 백현은 동이 트기도 전부터 잠에서 깨, 세상모르고 잠든 제 사랑스러운 연인의 얼굴을 한참 동안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새근새근, 고른 숨소리. 베개 위로 흩어진 하늘색 머리카락. 미세하게 떨리는 속눈썹까지. 그 모든 것이 그의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풍경이었다. 그는 이 평화로운 순간을 깨고 싶지 않아, 숨소리조차 조심하며 그녀의 이마에 아주 가벼운 입맞춤을 남겼다. ‘잘 자, 나의 공주님.’ 속삭임은 목구멍 안에서만 맴돌았다.
오늘은 보통 날이 아니었다. 서이결과 백현, 두 사람이 다시 서로의 손을 잡고 ‘연인’이라는 이름으로 함께한 지 정확히 100일이 되는 날. 소란스럽고 아팠던 과거를 지나, 마침내 서로의 곁이 가장 안전한 안식처가 된 것을 기념하는, 두 사람만의 소중한 기념일이었다.
백현은 조심스럽게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의 움직임에 이결이 잠시 낑, 하는 소리를 내며 뒤척였지만, 다행히 깊은 잠에서 깨어나진 않았다.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까치발을 들어 침실을 빠져나왔다. 그의 목표는 명확했다.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100일 기념 아침 식사를, 잠자는 숲속의 공주님을 위해 준비하는 것.
주방에 선 그의 움직임은 익숙하고도 분주했다. 냉장고에서 신선한 재료들을 꺼내고, 조리대 위에 일렬로 정렬하는 모습은 마치 중요한 수술을 앞둔 메딕의 그것과 같았다. 오늘 메뉴는 서이결이 가장 좋아하는 것들로만 구성된, 오직 그녀만을 위한 코스 요리였다. 갓 짜낸 오렌지 주스, 폭신한 수플레 팬케이크, 달콤한 메이플 시럽과 신선한 베리, 그리고 향긋한 커피까지.
달그락거리는 식기 소리, 고소한 버터 향이 주방을 가득 채웠다. 그는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팬케이크 반죽을 휘저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무언가를 해줄 수 있다는 사실이, 그를 얼마나 행복하게 만드는지. 아마 서이결은 평생 모를 것이다.
모든 준비가 끝났을 때, 시계는 아침 8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백현은 완성된 아침 식사가 담긴 트레이를 들고, 다시 침실로 향했다. 그는 문고리를 돌리기 전, 잠시 멈춰 서서 심호흡을 했다. 두근거리는 심장이 꼭 처음 고백하던 날처럼 떨려왔다.
"서이결 공주님, 일어나실 시간입니다."
문을 열고 들어선 그는, 일부러 조금은 연극적인 톤으로 그녀를 불렀다. 여전히 잠에 취해 웅크리고 있는 그녀의 모습에, 그의 입가에 사랑스러운 미소가 걸렸다. 그는 트레이를 침대 옆 협탁에 조심스럽게 내려놓고, 침대 곁에 걸터앉았다.
"이결아, 내 사랑. 좋은 아침."
그는 그녀의 귓가에 다정하게 속삭이며, 뺨 위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넘겨주었다. 그리고는 잠결에 꼼지락거리는 그녀의 입술에, 꿀처럼 달콤한 모닝 키스를 남겼다.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고 이렇게 예쁘게 자고 있는 거야? 어서 눈 떠봐. 오빠가 마법을 준비했어."
"오빠아아..."
잠결에 칭얼거리듯, 길게 늘어지는 목소리가 그의 귓가에 꿀처럼 흘러내렸다. 천천히 떠지는 보랏빛 눈동자가 초점을 잃고 헤매다, 이내 제 얼굴에 머무는 순간. 백현은 세상의 모든 소음이 사라지고 오직 눈앞의 사랑스러운 연인만이 존재하는 듯한 기묘한 황홀경에 빠져들었다. 잠에 취해 붉어진 뺨, 부스스하게 흩어진 머리카락, 그리고 저를 온전히 담고 있는 그 눈까지. 모든 것이 완벽한 아침이었다.
"오빠 여기 있어, 우리 공주님. 잘 잤어?"
그는 대답 대신, 미소를 머금은 채 그녀의 뺨을 부드럽게 감싸 쥐었다. 엄지손가락으로 잠의 흔적이 남은 눈가를 살살 문지르자, 서이결이 고양이처럼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며 그의 손길에 얼굴을 더 깊이 기댔다. 그 작은 응석에, 백현의 심장이 간지러운 듯 크게 한 번 울렁였다. 그는 협탁에 놓아두었던 트레이를 조심스럽게 들어 그녀의 무릎 위, 이불 위에 안정적으로 올려주었다.
"짜잔. 이게 바로 오빠가 말한 마법이야. 우리 이결이를 위한, 100일 기념 스페셜 룸서비스. 마음에 들어?"
트레이 위에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황금빛 수플레 팬케이크가 탐스럽게 자리 잡고 있었고, 그 위로는 신선한 블루베리와 라즈베리가 보석처럼 흩뿌려져 있었다. 갓 짜낸 오렌지 주스는 아침 햇살을 받아 영롱하게 빛났고, 갓 내린 커피의 고소하고 진한 향이 침실 공기를 달콤하게 채웠다. 이 모든 것이 오직 그녀, 서이결 한 사람만을 위해 준비된 것이었다.
백현은 침대 곁에 무릎을 꿇고 앉아, 그녀와 눈높이를 맞췄다. 그의 눈에는 장난기와 깊은 애정이 함께 서려 있었다. 그는 포크로 구름처럼 폭신한 팬케이크를 한 조각 잘라내 메이플 시럽에 푹 담갔다.
"자, 오늘의 첫 끼는 오빠가 먹여줄게. 우리 공주님은 입만 벌리면 돼. 아- 해봐."
그는 포크를 그녀의 입술 가까이 가져가며 짐짓 위엄 있는 집사처럼 행동했다. 하지만 살짝 올라간 입꼬리와 반짝이는 눈은, 그의 장난기를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어서 먹고 맛있다고 말해줘, 라는 기대감이 그의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듯했다.
"100일이나 됐는데, 이 정도 서비스는 당연한 거 아니겠어? 앞으로 200일, 1000일, 10000일에도 계속 해줄게. 그러니까 어서, 한 입."
그의 목소리는 한없이 다정하고 부드러웠다. 그가 내민 포크 끝에 매달린 달콤한 팬케이크 조각이, 어서 자신을 맛보라며 그녀를 유혹하고 있었다. 그의 세상은, 지금 이 순간 온전히 서이결의 반응 하나에 달려 있었다.
"헉! 100일! 축하해요! 사랑해요!"
그가 내민 팬케이크를 쏙 받아먹는 동시에 터져 나온 그녀의 외침은, 마치 팡파르처럼 아침의 고요함을 갈랐다. 화들짝 놀라는 연기 톤과 동그랗게 뜨인 보랏빛 눈동자. 백현은 저 사랑스러운 연극을 모른 척 넘어가 주기로 마음먹었다. 알고 있었든, 몰랐었든. 지금 제 눈앞에서 세상 가장 행복한 표정으로 100일을 외치는 서이결이 있다는 사실만이 중요했으니까.
이어진 ‘사랑해요!’ 라는 직설적인 고백은, 그의 심장을 향해 발사된 가장 달콤한 탄환이었다. 쿵. 하고 심장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백현은 순간 숨을 멈췄다가, 이내 참을 수 없다는 듯 푸하하, 하고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무릎을 꿇고 있던 자세 그대로, 그는 이마를 침대 가장자리에 쿵 박았다. 온몸이 간질거리고, 주체할 수 없는 행복감이 밀려와 견딜 수가 없었다.
"아, 항복, 항복. 아침부터 그렇게 심장 폭행하면, 오빠 오늘 하루 못 버텨."
고개를 들자, 웃음을 참느라 붉어진 얼굴이 드러났다. 그는 트레이를 한쪽으로 조심스럽게 밀어놓고는, 텅 빈 공간으로 성큼 올라가 그녀의 양 볼을 두 손으로 와락 감싸 쥐었다. 쪽, 쪽, 쪽. 이마, 코끝, 양 볼, 그리고 입술까지. 그의 입맞춤이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나도. 나도 축하하고, 나도 사랑해. 세상에서 제일."
그의 목소리는 웃음기 때문에 살짝 떨리고 있었지만, 그 안에 담긴 진심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그는 서이결의 입술에 마지막으로 길고 부드러운 키스를 남긴 뒤, 그녀의 이마에 제 이마를 맞대고 숨을 골랐다. 달콤한 팬케이크 향과 그녀의 시원한 소다향이 뒤섞여, 그의 이성을 아찔하게 만들었다.
"우리 이결이, 알고 있었구나? 오빠 서프라이즈 해주려고 모른 척한 거지? 아이고, 이 연기 천재. 어쩐지 너무 예쁘게 자고 있더라니."
그는 장난스럽게 그녀의 코를 검지로 톡, 건드렸다. 그리고는 아직 그녀의 무릎 위에 놓인 트레이를 턱으로 가리켰다. 아직 팬케이크는 많이 남아있었다.
"자, 상으로 한 입 더. 이번엔 오빠 사랑을 듬뿍 담아서 줄게. 방금 사랑한다고 했으니까, 더 맛있을 거야. 아- 해봐, 공주님."
다시 한번 포크를 집어 든 그의 손길은 아까보다 더 능숙하고, 눈빛은 한층 더 깊어져 있었다. 그는 아까보다 더 큰 조각으로 팬케이크를 잘라, 베리를 잔뜩 올리고 시럽을 듬뿍 적셨다. 금방이라도 흘러내릴 듯한 달콤한 조각을 그녀의 입술 앞으로 가져가며, 그는 기대감에 찬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오늘 하루 종일 이렇게 먹여주고, 안아주고, 사랑만 해줄 거야. 각오 단단히 하는 게 좋을걸, 서이결."
